캐롤 선곡
 
내 이글루스에 드나드는 우리 브로들에게 어울리는 캐롤 한곡 띄우오

멜리 크리스마스~

노래는 이 주소로 가서 들어요
http://indipeace.egloos.com/2311768
 
데이드림 - 병신같이

무심한 시선에 찬 내 심장은 설레이고
거리마다 사람들의 따스한 체온 숨막히고
세상이 슬픔으로만 가득찬 것이 보이느냐
내 마음을 모르겠어 생각해봐 내버려봐
병신같이 병신같이

심장을 도려내는 그 슬픔에 난 목말라서
저 겨울에 태양에 의지하며 걷고 또 걷고
거짓 웃음에 홀린 불쌍한 사람 불쌍한 거리
세상이 슬픔으로만 가득찬 것이 보이느냐
병신같이 병신같이 병신같이 병신같이

무심한 시선에 찬 내 심장은 설레이고
거리마다 사람들의 따스한 체온 숨막히고
세상이 슬픔으로만 가득찬 것이 보이느냐
거리마다 사람들의 따스한 체온 숨막히게해 나를...
by baltak | 2009/12/24 23:09 | 트랙백 | 덧글(0)
유투브질
 


얘들이 왜 저 소음을 즐기는지 이해할 수 있을때~
그러기 위해선 무수한 각성과 지식이 필요하다
물론 걔중에도 멍충한 녀석들은 많다



또 형님들이 환상적인 슬랩스틱으로 창의적인 웃음을 줄 때 
나에겐 이런 것이 다양성이다


세상에 이런 기상천외한 음악으로 페스티발도 열릴 때
우리가 아는 핀란드는 카모메 식당이지만, 내가 알고 싶은 핀란드에는 왜 이런 음악이 존재하는지 

나에게 세상에 궁금한게 남아있다면 이정도 뿐

아 언젠간 저들 세계의 일상과 감성에 얽혀보고 싶다


보너스



나름 메이져. 잘 논다 반지의 제왕이 따로없다


거의 아트씨네마테크다


스페인 영상미학 -_-
by baltak | 2009/12/18 08:33 | 트랙백 | 덧글(1)
[short story about fart] 방귀에 관한 짧은 얘기....
 

긴장할 때마다 뿡뿡 방귀가 나오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사람들이 누구나 살면서 일반적으로 겪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늘 일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남자가 문제를 처음으로 심각하게 느낀 것은 중학교 시절이었습니다. 어렸을 적엔 엄마 품 안에서 크게 긴장을 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서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중학생이 되어 간 입학식에서 그는 처음으로 알 듯 모를 듯한
묘한 긴장을 느꼈습니다. 그날 그는 교실에 앉아 살짝 몇차례 방귀를 뀌었습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학교를 다닌지 얼마 안된 어느 날 남자는 처음으로 일진들과 만났습니다. 일진들이 다가온 순간,
남자는 그만 그 앞에서 뿡뿡대며 방귀를 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일진 중 한 명이 남자의 어깨에 손을 얹고 욕을 해대며, 
뭐라뭐라고 떠드는 데 남자는 긴장하여 아무 말 못하고 그저 앉아서 방귀만 뀌었습니다. 그것을 무시의 표시로 이해한 일진들은 
남자 옆에서 점점 격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에 아이들이 짱을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그 짱 앞에서도 계속
방귀를 뀌고 말았습니다. 열받은 짱이 멱살을 잡아 남자를 일으켰습니다. 멱살을 잡힌채로, 그는 방귀를 뀌고 있었습니다.
그 날 방과후 그 남자는 놀이터에 끌려가 다시는 자신 앞에서 방귀를 뀌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짱에게 죽도록 맞았습니다.

고등학교에서도 남자의 불행은 이어졌습니다. 수능 시험을 보는 날에도 긴장한 나머지 남자는 매 교시
시험지를 받을 때마다 뿡뿡 거렸습니다. 심지어 한 문제 한 문제를 풀 때마다 뿡뿡 댔습니다. 간혹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면
한 문제를 푸는 동안 여러 번 뿡뿡 방귀를 뀌었습니다. 다른 학생들의 시험에 방해를 준 건 물론이며,
심지어 1교시 시험이 끝나고 너 땜에 내 인생 다 망쳤다며 엉엉 우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그 앞에서도
또 방귀를 뿡뿡 뀌고 말았습니다. 결국 2교시 시험이 끝나고 남자는 양호실에 겪리되어 혼자 시험을 치뤄야 했습니다.

졸업 후 취업 시기엔, 면접을 볼 때도 계속 방귀가 나와, 결국 매번 면접을 다 보지도 못하고 나와야 했습니다.
앉자마자 뿡뿡 거리기 시작해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방귀가 나왔습니다.

참 슬픈 일도 있었습니다.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도 긴장한 나머지, 그만 방귀부터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날 남자는 타고 가던 택시 안에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기자 아저씨에게 이야길 하고 병원 방향으로 차를 돌렸습니다.
부친이 돌아가셨다는데 계속해서 방귀가 나오는 남자를 보며, 기사 아저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 데 어떻게 그렇게 방귀가 잘도
나온다며 이런 천하의 불효자식은 처음 본다고 남자를 당장 택시에서 쫒아냈습니다. 


가장 큰 비극은 지하철에서 일어났습니다. 한번은 지하철 앉은 자리 맞은 편에 맘에 드는 아주 이쁜 여성을 보았는데
방귀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뿡,뿡,뿡,뿡. 지하철의 사람들이 자신 쪽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가씨가 너무도 맘에 들었던
남자는 쪽팔림을 무릅쓰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습니다. "제가 긴장을 하면 방귀가 나와서 그렇습니다. 절대로
당신을 놀리거나 수치스럽게 하려는 게 아닙니다."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그녀 앞에 서자 방귀가 뿌우웅 뿌직ㅡ 하며 자신의 방귀
역사상 가장 깊고 긴 소리를 내며 나오는 바람에, 그녀는 물론이고 객차 안의 모든 사람이 도망을 갔습니다.
결국 남자는 목적지까지 빈 객차 안에 오로지 홀로 남으신 할아버지 한 분과 함께 전철을 타고 가야했습니다.  
남자가 지하철에서 내리려고 하자 할아버지가 남자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1."남자는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거여...."
2."괜찮혀, 난 원래 냄새를 못마터~"
3."우리 손녀가 아주 좋아혀, 방귀 대장 뿡뿡이 아녀?"
4."야, 너 완전 미친거 아냐" (개콘 분장실 강선생님톤)
by baltak | 2009/11/13 07:00 | 트랙백 | 덧글(3)
루저 잡설 2 (이것이 O남들의 수다 였다면...)
 
만약 이것이 조건 좋은 남자들의 수다였다고 가정하자

우리 사회에서 남성은 경제력이 여성은 아름다운 외모가 권력으로 작용하니까

이렇다. 조건 좋은 남자가 앉아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금융권 남 1 : "외모가 경쟁력인 시대에 못생긴 여자들은 루저죠"

대기업 남 1: "제가 돈이 좀 있기 때문에 못생긴 여자는 싫어요"

조건 좋은 남 1 : "젊어서 연애할 때는 조금 못생겨도 내 뒷바라지 해줄 수 있는 여자가 좋은데
                       결혼할 때는 따져야하는 조건이 달라지죠. 
                       저도 경제적으로 자리잡고 그러면 이쁜 여자랑 결혼해야죠"

"조건 좋은 남 2: 무조건 이뻐야 합니다. 제가 못생겼기 때문에 여자도 못생기면 안되요. 2세 생각도 해야죠"

 
만약 왠 허우대 멀쩡한 남정네들이 주루루루 나와 앉아가지고 이런 얘기를 TV에 전국 방방에 대고 했다고 치자.

여자들의 반응이 우땠을지 심히 궁금하다.

싸움을 붙히자는 게 아니라.

TV 나와서 저런 얘기를 저렇게 잘도 주저리 대는 것은 무슨 여자들의 특권이냐???

니들은 잘나서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경쟁력이 있다면

남자들도 TV 나가서 실컷 못생긴 여자들 루저라고 얘기할 때

그저께 미수다에 출연했던 여자 대학생들 니들은 그 얘기를 그냥 다 들어야하며

토달지 말고 수긍해야 한다. 그래야만 앞뒤가 맞는거다.

그때 가서 다시 거기다 대고 사랑 타령 따위를 하거나 여성들도 뭐가 어쩌고 저째요 저항하지 말아야 한다.

아 진짜 어디 꼴통 같은 대한민국의 겉보기에 멀쩡한 남자들 모아 앉혀놓고 똑같이 떠드는 경쟁 프로를 하나 만들어야 한다.

그때는 대학생 남자들이어서는 안된다. 이쁜 여자를 골라서 장가갈 수 있는 조건 갖춘 남자들이 나와야 한다.

암튼 그냥 역으로 생각해 봤다. 여대생들이여 잘 생각해봐라. 구질구질한 마초들은 너희들의 그 세련된 표피 안에도 있다.


(아니 현실적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정말 무슨 완전 빈털털이 그지도 아닐꺼고, 그런 사랑하는 사람과 조건에 상관없이

 함께 이 현실속을 사회 속을 살아가겠다는 진짜 진취적인 용기도 없으면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TV 나와서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이야기한다는 자아도취성 젊은 여성으로서 용기만 가졌다.

 요샌 남들 앞에서 과감하게 여성미를 뽐내는 것이 용기인가? 착각도 참. 그럼 남자들이 자신이 갖춘 경제적 조건을 뽐내는 것,

 그 조건을 당당하게 휘두르겠다며 보여주는 것도 용기겠네. 이거 뭐 못생기고 없는 것들은 용기도 못가겠구만. 진상소리나 듣지)

by baltak | 2009/11/12 06:38 | 트랙백 | 덧글(4)
망할 눔의 루저 떡밥
 

아 진짜 안볼라 그랬는데

이건 원 사상초유의 루저 기사 도배질로 도망칠 곳이 여의치 않았다


내가 한가지 인식한 것은 이 부분이었다

점점 우리 사회 의식도 진보 되어 가고 있는데, 이거 완전 불균형 상태의 진보다.

아니 사실 이거는 의식의 진보도 아니고 진보를 가장한 천박과 보수다.

어제 미수다에 나와 여대생들이 보였던 사회 의식과 의견은 완전한 보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오로지 여성 자신들 스스로 꾸미고 드러내고 화려하게 치장하고 노출하고 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맨 이런거만 진보해달라고 주장한다.

내가 이래서 패션좌파니 잘 꾸미고 이쁘고 되바라진 좌파들을 싫어한다. 

완전 어이없다. 그러면서 젊었을 땐 싱싱하고 매력이 질질흐르는 외모를 가춘 남자를 옆에 두고 폼재며 다니고

결혼해서는 돈많은 남자로 바꿔서 좋은 차타고 귀걸이 목걸이 걸고 귀부인 행세나하고 다니면서

그 모든 잘난 척을 결국 다 옆에 있는 남자한테 기대서 이루고, 같은 여자들끼리 존재 과시의 혈투나 벌이려고 하니.

진짜 이런거 보면 여자들이 여자들의 가장 큰 적이다. 지들끼리 잘나가는 1등 귀부인 먹으려고 발광이다. 발광.

이런 비열하고 못돼먹은 보수적인 생각을 갖은 주제에

니미럴 여자들의 외모 성형 욕망 표출 따위는 징그럽게도 징징대지 진짜로.  

우리 의식이 진보되어 가는 부분은 오로지 연애와 성이다. 연애는 자유롭게 해야된다면서 결혼은 졸라 꼴 보수같이 해대는 꼴하곤.
 
사람을 전체적으로, 인간 일반을 어떻게 바라보고 상대해야하는 지에 대한 의식.

진정으로 인간이 서로 살아가면서 물질적인 가치 외에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탐구하고 대안적인 것들을 찾아보려는 의식.

이런 진짜 진보적인 의식은 아직도 몇 십 몇 백년 뒤에다 버려놓고는

맨 커피숍으로 뛰쳐나가선 세상에 있는 똥폼은 다 잡고 있다.

ㅉㅉ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대충 쓰고 간다
 
여성들의 갖은 욕구의 표출 그것이 과해서가 아니라 모든 균형을 잃은 진보적 의식은 기회주의이다

by baltak | 2009/11/11 22:57 | 트랙백 | 덧글(6)
화장실에 가기까지 (시간때우기ep1)
 

네 머릿속에 이 드넓은 세상을 전부 압축해서 구겨 넣으려고 하지 말 것

그런 모든 사유는 본질을 왜곡하고 만다

90%의 쓰레기로 이루어진 이 세상은 결국 쓰레기이고야 만다 이것은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이다

그렇다면 사고를 하고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이 사는 지평은 어디 쯤에 있을까

우리가 구성하는 딱 그 정도의 사회에 있다 

체면도 필요하고 적당히 눈감아 주는 기제도 필요하고 욕망도 있고 감출줄 아는 눈치도 필요하고

위선도 있고 지키지 못하는 약속도 있고 지키지 못하는 신념도 있고 컴플렉스도 있고 피해의식도 있고

자기 합리화도 있고 인지부조화도 있고 방어기제도 있고 모성본능도 있고 부성애도 있고

이 모든 것들이 서로 이루는 이질감 이물감 괴리 자괴감도 있고

이 모든 감성 형성을 이루게 해주는 어떤 세력이 주도해서 구성하는 물리적 환경도 있고

그 안에서 답이 없는 서로 다른 방향의 착각도 있고 싸움도 있고

육체적 고통이라는 유일한 진실도 있고

그것은 단순한 생물학적 생존 본능의 작용이라는 과학적 사실도 있고

까먹고 지내다 종종 떠올리는 추억도 있고 등등등

이 모든 것들이 삶을 이룬다

삶은 거기에 있다

시간의 일 분 일 초 한 시간,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낸 이 모든 것들을 몇 줄의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 몇 줄의 문장에 담겨 있는 것은 무엇이고 빠져있는 것은 무엇인가

삶은 또 그 반쯤은 채워져 있고 반쯤은 비어있는 그 문장으로도 구성된다

삶을 쫒아 빙글빙글 돌다보면 다양한 방향의 벽으로 둘러 쌓여 있다

높이 10m 두께 1m 미만의 벽 우리는 결코 맨손으로는 그 벽을 넘거나 부술 수 없다

그 벽에 부딪혀 계속 이루지 못할 극복을 꿈꾸다 그 자리에서 생을 마감하든지

영리하게 이 벽과 저 벽을 갈 수 있는한 최대한으로 다 가보든지

아니면 몇 개만 가보든지

남들이 잘 몰려가지 않는 벽으로 달려가 부딪혀 보고 그 이야기를 나누어 보든지

가끔은 위에서 말한 그 모든 인간의 지평을 박탈 당한
 
왜 존재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쓰러져 있는 인간도 보며 지나치고

그러면서 상대적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아가고

내 세상도 상대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내 모든 삶은 몇 가지 특정 심리적 근원과 원경험에서 근거한다는 것을 발견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다

종종 서서 이 모든 것으로 제 자신을 재구성 해본다

이런 인간의 지평에서 너무 멀리와버렸다

다시 사회로 돌아간다

지구로 돌아간다

평균 80년을 사는 언젠가 멸종해버릴 동물로 돌아간다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종으로 돌아간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내 안에 갇혀 탈출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안다 

다시는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으리라고 잠시 생각한 뒤

인간이기에 화장실로 용변을 처리하러 간다 

아니 용변을 보다 다시 생각의 길을 열고 다음엔 꼭 상위 0.1%의 지배자의 자식으로 태어나보리라고 생각한다


by baltak | 2009/11/11 03:16 | 주저리 | 트랙백 | 덧글(4)
또 다시 개똥시를 써야하나
 
[21세기 존재미학]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이 명제 하나를 두고
적을 공격하고 자신을 방어한다

다시 반복한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그래도 적은 공격하고 나는 방어한다
그래도 적은 공격 받아야 하고 나는 보호 받아야 한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오른편에 서있는 자들에겐 부덕이지만
왼쪽으로 서있는 이들에겐 인간적 미덕이다

인간이기에 나약하고
인간으로서 자유로운
나를 위해서

현실이라는 거대한 거울에 반사되어
나의 사유는
자유의 환영이 되고
그 눈부신 빛에 도취된 그들은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혹은 서로의 이름을 아는 채
홀로 화려히 쓰러진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은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것이 된다

젠장
by baltak | 2009/10/30 04:53 | 트랙백 | 덧글(0)
현재 사회에서 교육 받은 노동력이라는 것
 

근대나 현대의 인류 역사를 대충만 쓱 살펴봐도, 한 백 년 사이의 짧은 기간동안 엄청난 규모의 기술.산업.경제의 발달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모든 분야에 있어서 말이다. 학문적으로는 전자전기공학 기계공학 자동차공학 컴퓨터공학 등등으로 다양하게
나누어 볼 수 있겠고, 그러한 기술 연구를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우리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많은 것들이 나타났다.
텔레비젼부터 냉장고 세탁기 비디오 dvd플레이어 전화기 LCD 기타 등등등.

이런 것들이 한창 연구 개발되고 연관된 새로운 분야들이 개척되던 시절, 즉 산업의 발달과 부흥 초기, 일종의 '붐'이 일던 시절.
이 시절엔 사회에 제공되는 인력들에게, 새롭게 가르치고 교육시킬 것이 많았고, 각 분야의 단계별 수준별로 투입 시킬 곳이 
무수하게 많았다. 하나의 새로운 상품을 생산하여 사회에 내놓기 까지 높은 기술력부터 자질 구레한 과정들까지 
이 새로운 거대 산업 경제의 셋팅을 위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노동력들을 필요한 곳에 배치하고 사용할 분야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그리고. 산업과 자본 경제가 어느 정도 제자리를 잡고, 두 세 세대를 거치는 동안, 
현재 세계의 사회 경제는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이제 필요한 곳에 필요한 수의 노동력들의 배치는 충분히 이루어 졌고, 그 사람들이 이미 오랜 세월을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별로 많이 다양해 지지도 않은 산업과 전공 분야에, 비슷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사회로 배출 된다. 옛날엔 기발하고 독보적인 소수의 사람과 그것을 뒷받침할 인력들이 골고루 함께 필요했지만
이제 후자의 사람들은 크게 부족하지도 않은데 너무 많아져 버린거다.

이제 모든 생산과 기술 시스템은 안정적인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고, 최전방에서 혁신과 기업간 경쟁을 이끌어 갈 극소수의 인력을
제외하곤 특별히 그런저런 교육을 받은 인력들이 절실하게 필요할 일은 없어졌다.
이것은 현재 전 세계의 모든 대기업들이 경영의 핵심적인 부서들만 빼고 하청 시스템을 이용함으로써 기업의 규모를 줄여나가고
있다는 사실로도 확인된다.

여하튼 그래서 이런 저런 이유로, 산업 정착 이후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것이 바로 서비스 산업이다.
이전 산업 사회의 환경을 기반으로, 이제 그것을 활용하여 여가와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그 새로운 환경의 조성을 위한
서비스 산업의 발달과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그래서 또 한 동안은 무수한 서비스 산업의 개발과 발달이 있었다.
하지만 서비스 산업은 서비스 산업의 특성상 일하는 노동력 혹은 인력의 수명이 짧다.
서비스 산업은 항상 젋고 신선한 분위기가 요구 되기 때문에 직업의 수명은 짧고 노동력의 회전율이 빠르다.
그리고 이전의 산업 기술 시기와 달리 갖추고 요구되는 조건이나 교육이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그 노동력의 가치는 높지 않다. 게다가 조건을 갖추는 데 필요한 교육과 연마의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제공되는 인력의 수도 상대적으로 부족함이 없다.
이렇다 보니 사회의 구성원들도 서비스 산업의 짧은 수명과 불안정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처하고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일자리를 찾는다. 혹은 자신이 지속해서 스스로를 개발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확신있는 적성을 찾아간다.

허나 그런 적성을 찾아 발휘하고 있는 사람들도 한 세대에 뭐 몇 명이 있다고 가정해도, 다음 세대에도 또 그만큼의 인재가 사회에
나올 것이고, 앞으로 짧게는 5년 10년 심지어는 매년 그런 사람들이 사회로 나온다. 이미 그들을 특별하게 수용할 수 있는
경제구조는 포화 상태이다. 그래서 인생과 일에는 운이라는 요소가 필요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학력 사회와 더불어 매년 상급 교육을 받은 인력과 노동력들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데, 
이미 산업 부흥기의 세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과 생활의 윤택함 편리를 놓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기업들은 그 산업과 경제 구조의 중간층을 형성하는 그 인력들을, 회전율을 높여 최대한 활용한다.
이미 노동력의 전반적이 평가절하가 이루어진 이 상황에서 그 회전율 주기에서 튕겨나가지 않기 위해
사회의 구성원들을 혹독한 경쟁과 조건들을 감수해야만 한다.

실상 엄청난 의지와 재능 운과 요새는 특별히 인맥과 소위 배경이 되지 않는 이상, 여유를 되찾는 인생의 시기란
개인의 인생에 도래하기 꽤나 힘들어 보인다. 평생 뭐 빠지게 일하다가 나이들어 늙어갈 때나 조금 나아질 까.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젊은 시기 가장 머리 맑고 마음에 긍지를 품고 기타 등등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 낼 수 있는 시기를
모조리 일하는 데, 그리고 아웃당하기 않기 위해 복종해야한다. 

여기서 일일이 다 이야기 할 순 없지만, 이 모든 상황들은 이론과 사실로서 확인된 것들이다.
기업의 구조조정과 고학력 인력들, 수많은 박봉의 하청 업체들. 88만원 세대가 말했던 세대간 경제력 구도 등.
모더디즘과 포스트모더니즘으로의 이행과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구조의 재편성. 3차 산업 발달.

매년 모든 분야에서 비슷한 능력과 교육 수준을 갖춘 인력들이 사회에 제공되는 데, 더 이상 갖다 둘 데는 없고,
아주 조그만 별 큰 의미도 중요하지도 않은 조그만 변별력 차이로 합격 불합격과 인생의 당락이 결정되니
사람들의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경쟁은 극한으로 치닫는 것은 당연하다.

여하튼 이 환경 아래에서 필연적으로 노동력은 점점 더 평가절하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 가치관의 전쟁이다. 필요한 교육을 받고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가 된다는 것은 더이상 의미가 없는
노력이 되어버렸다.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당신과 똑같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과 공감은 커녕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하고, 그러면서도 별로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운? 그야말로 당신이 운이 좋다면. 
사회의 어떤 각 분야의 성공한 사람들. 그들은 일종의 환타지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이런 저런 고민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경제적 배경이 좀 되어야 한다. 아니면 막장 모드로 끝장 볼 작정으로
뛰어 들던지. 하지만 누구다 다 이렇게 살 필요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누구나 다 자기가 잘하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
그거 하나에 미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회의 산업 구조에 편입되는 가치를 거부한다면, 그럼 다른 대안은 무엇일까.
이미 자본권력이 모든 산업과 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가진 상황에서 의미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가능한지.
아니면 그 구조 안에서 실현 가능한 것들은 어떤 것들일지. 그것들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와 새로운 의식의 도래를
이끌 수 있을지. 하지만 그런 노력 역시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나는 많이 보았다.
사회 전반의 가치관의 전환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구조적 억압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럼 이 만성적인 구조 아래에서 원죄의 벌을 받듯이 살아야 하나. 아니면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는 운좋은
일인이 되기 위해 특별한 철인이 되어야 하나. 정말 하고 싶은 일로 즐거워서 그 일을 하면 삶의 여유와 성공까지 누리는
사람이 있다지만, 그런 사람이 있는데 너는 왜 못하냐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이게 근거라며 들이댈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런 사람들은 보면 어쨌든 자신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과 관련해서 보낸다. 하지만 난 일에만 미쳐 살고 싶진 않다.
사람들도 만나고 싶고 여유로운 정신을 갖고 수다도 떨고 가끔 함께 쿵짝 거리며 살고 싶다.
이 모든 게 다 너무 현실적이지 못한 욕심이라면, 아 대체 그따위 삶을 왜 살아 가는 건지 이해가 안된다.
혹독하고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 성공의 자리에 오르는 신화는 이제 거부해한다.
난 그 신화가 우리에게 뭘 바라는 건지 우리에게 요구하는 의식이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한 명 한 명에게 자신의 인생에서 전사가 되라고,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의지의 투사가 되라는 것 같다.
그래서 전리품을 챙기는 성공한 일인이 되라고. 그러나 여기에 기본적으로 깔린 사회에 대한 개념이 바로 전쟁터라는 거다.
앞으로 이 인식과 가치관은 절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다. 그래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총 칼 들고 달려온다면 나도 내쳐야겠지.
석가모니나 예수처럼 앉아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결국 나도 전쟁터의 전사로 거듭나고 만다.

그럼 전쟁터로 비유를 옮겨, 일개 졸병에서 무공을 세워 진급한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태어난 신분 자체가 달라
조직 안에서 유리한 지위에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졸병은 최전방에서 무수한 생사의 순간을 운으로 넘겨야 하고
또 운 좋은 상황이 자신 앞에 와야한다. 그리고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어야 한다. 아니면 졸병은 계속 열악한 환경
속에서 똑같은 생활 수준을 반복해야 한다. 그러니 다들 이 악물고 뛰어들게 된다. 진급의 전리품을 위해.   

현실적으로 필요한 건 어떤 완충지대 같은 게 아닌가 한다. 이미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가 하나의 기준과 잣대 아래 너무 평가절하
되어있다.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면, 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만이라도 모여서 뭐라도 해보는 수밖엔. 모르겠다 나도. 
피곤하여 급 마무리.,,

by baltak | 2009/10/29 00:31 | 주저리 | 트랙백 | 덧글(0)